목차
제이크 설리의 판도라 입성과 이중 스파이 임무
나비족과의 교감과 전쟁, 그리고 선택
판도라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나비어부터 캐스팅 비화까지, 제작 뒷이야기

제이크 설리의 판도라 입성과 이중 스파이 임무
아바타 프로젝트는 그레이스 박사가 기획한 것으로,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결합해 만든 아바타를 통해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족과 소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여기서 아바타(Avatar)란 힌두교에서 신이 인간 세계에 내려올 때 취하는 육체를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나비족 형태의 인조 신체에 투사하는 기술로 재해석됐습니다. 아바타는 해당 유전자를 가진 사람만 링크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서, 과학자 토미가 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쌍둥이 동생인 제이크 설리가 대신 투입됩니다.
제이크는 하반신 마비 퇴역 군인으로, 판도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바타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가 처음 아바타에 접속해 두 다리로 뛰어다니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한편 본부장 파커와 총사령관 쿼리치 대령은 자원 채취를 위해서라면 나비족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입니다.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를 첩자로 활용해 나비족의 거주지인 홈트리(Hometree) 위치와 약점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이크의 처지가 참 복잡하다고 느꼈습니다. 인류 입장에서 보면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판도라의 언옵테늄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반면 나비족은 수천 년간 판도라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원주민이죠.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무 중 맹수의 공격을 받아 홀로 남겨진 제이크를 나비족의 네이티리가 발견합니다. 네이티리는 제이크를 죽이려 활시위를 당겼지만, 바로 그때 영혼의 나무 씨앗이 날아들면서 에이와 여신의 계시라 여기고 그를 부족으로 데려갑니다. 나비족은 에이와(Eywa)라는 여신을 중심으로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가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데, 이는 일종의 생태계 네트워크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비족과의 교감과 전쟁, 그리고 선택
제이크는 네이티리를 따라다니며 나비족의 문화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동물과 교감하는 법, 날아다니는 익룡 이크란(Ikran)을 조종하는 법 등을 익히면서 점차 나비족을 깊이 존중하게 됩니다. 나비족 역사에서 단 5명만이 길들였다는 전설의 괴물 토루크(Toruk)는 나비족 언어로 '마지막 그림자'를 뜻하며, 이크란의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제이크는 나중에 이 토루크를 길들여 '토루크 막토(Toruk Makto)', 즉 토루크를 탄 자가 되면서 나비족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제이크는 본부에 나비족 정보를 전하던 첩자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비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나비족도 그를 받아들여 부족원으로 인정하는 의식을 치르고, 제이크는 전통에 따라 네이티리를 자신의 짝으로 선택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이크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나비족의 편이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배신이라고 보시는데, 저는 제이크가 실제로 나비족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된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부는 나비족의 홈트리를 밀어버리며 본격적인 침략을 시작합니다. 불도저에 달려드는 제이크를 본 본부는 그의 아바타 링크를 강제로 끊어버리고, 나비족 역시 자신들을 배신한 제이크에게 분노합니다. 쿼리치 대령의 공격으로 홈트리는 불타 무너지고, 족장 에이투칸도 목숨을 잃습니다. 침략에 저항하던 그레이스 박사도 부상을 입어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제이크는 조종사 트루디의 도움으로 탈출한 뒤, 숨겨둔 곳에서 아바타에 다시 접속해 토루크를 길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토루크 막토로서 흩어진 나비족 부족들을 결집시키고, 인간에 맞서는 대규모 결전을 펼칩니다. 나비족이 전멸 위기에 처하는 순간, 에이와 여신의 힘으로 판도라의 모든 동물들이 몰려와 함께 싸우면서 전세가 역전됩니다. 쿼리치 대령은 네이티리의 화살에 맞아 죽고, 인간은 판도라에서 추방됩니다.
판도라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바타를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판도라 행성의 동물들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모든 육지 동물이 다리가 6개라는 걸 눈치채셨나요? 이건 그냥 디자인 차별화가 아니라 제작진이 과학적 설정까지 고민한 결과입니다. 판도라는 공기밀도가 지구보다 높아서 공기저항이 크기 때문에, 동물들이 앞쪽 4개 다리로 큰 견인력을 만들고 뒷다리 2개가 보조하는 식으로 진화했다는 설정이죠. 여기서 견인력(traction)이란 물체가 지면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말하는데, 판도라처럼 저항이 큰 환경에서는 더 많은 접지면이 필요했던 겁니다.
더 흥미로운 건 눈입니다. 판도라 동물들은 전부 두 쌍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나비족만 예외적으로 한 쌍입니다. 제작진은 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프롤레무리스(Prolemuris)라는 중간 진화 단계 생명체를 설정에 넣었습니다. 이 생명체를 보면 눈은 한 쌍이지만 팔이 팔꿈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나비족이 어떻게 4개 팔다리로 진화했는지 추론할 수 있게 만들었죠. 저는 처음엔 그냥 멋진 외계인 디자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진화론적 설정까지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감독의 집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이크가 타게 되는 이크란(Ikran)도 디테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이 생명체는 두 쌍의 눈 중 하나는 독수리의 눈에서, 다른 하나는 염소의 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정보는 아바타 공식 설정집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염소의 눈은 약 300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독수리의 눈은 먼 거리에서도 사냥감을 정확히 포착하죠. 이 두 가지를 결합해서 이크란이 사냥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최상위 포식자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제이크가 이크란을 처음 만났을 때 이크란이 진심으로 그를 죽이려 달려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이크란이 "너를 선택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평생 파트너로 삼을 상대를 만나면 먼저 죽을 각오로 덤비는 거죠.
판도라의 최상위 포식자인 토루크(Toruk)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중반부에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하늘을 날다가 토루크에게 습격당하는 장면, 자세히 보면 토루크는 네이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제이크만 쫓습니다. 이미 제이크를 자기 파트너로 점찍었기 때문이죠. 나중에 제이크가 토루크를 타고 '토루크 막토(Toruk Makto)'가 되는 걸 암시하는 복선이었던 겁니다. 이런 디테일을 알고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비어부터 캐스팅 비화까지, 제작 뒷이야기
나비족의 언어인 나비어(Na'vi)는 그냥 지어낸 단어들이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언어학자 폴 프로머(Paul Frommer)에게 의뢰해서 무려 6개월간 만든 완전히 새로운 언어죠. 자음, 모음, 문법 체계까지 전부 설계되어 있어서 실제로 배우들이 나비어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1편 제작 당시 약 1,000개 단어로 시작했는데, 이후 게임과 2편 제작 과정에서 2,600개 이상으로 확장됐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나비족의 숫자 체계입니다. 우리는 손가락이 10개라서 십진법을 쓰지만, 나비족은 손가락이 4개씩이라 팔진법(octal system)을 사용합니다. 팔진법이란 0부터 7까지 세고 다음 자릿수로 넘어가는 숫자 체계인데, 나비족은 양손 합쳐 8개 손가락을 기준으로 숫자를 센다는 설정입니다.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 쓴 걸 보면 카메론 감독이 얼마나 완벽주의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도 험난했습니다. 카메론은 촬영장에 네일건을 비치해뒀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촬영 중 누군가 핸드폰을 울리면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벽에 박아버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집중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죠. 배우들도 고생이 심했습니다. 본격 촬영 전에 출연진 전체를 하와이 정글로 데려가서 직접 캠핑하고 물고기 잡아먹으며 정글 생활을 체험하게 했다고 하는데, 네이티리 역의 조 셀다나(Zoe Saldana)는 아예 전사 분장에 꼬리까지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CG 세트장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뽑아내려면 실제 환경을 몸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카메론의 철학이었던 거죠.
캐스팅 비화도 흥미롭습니다. 원래 제이크 설리 역은 맷 데이먼에게 제안됐는데, 수익의 10%를 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약 3,700억 원을 거절한 셈이 됐죠.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렇게 큰 돈을 거절한 배우는 할리우드 역사상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고 합니다. 최종 후보는 채닝 테이텀, 제이크 질렌할, 크리스 에반스, 샘 워딩턴이었는데, 카메론은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샘 워딩턴을 택했습니다. 무명 배우가 외지인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스토리가 영화 주제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레이스 박사의 아바타 디자인도 특별합니다. 시고니 위버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1979년 영화 '에이리언' 당시 젊은 모습을 본떠 만들었는데, 영화 설정상 그레이스의 아바타는 18년 전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정 하나하나에 논리를 맞춰가는 제작진의 태도가 저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바타는 단순히 CG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판도라 생태계부터 언어, 문화까지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10년을 기다린 이유가 단지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하려는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품이죠.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가 어떤 새로운 설정과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아직 아바타를 안 보신 분이 있다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다시 보는 것도 완전히 새로운 재미를 줄 겁니다.